송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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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회령첨사, 경상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학자.
이칭
  • 자경개(景蓋)
  • 호석계(石溪)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69년(선조 2)
  • 사망 연도1597년(선조 30)
  • 본관여산(礪山)
  • 출생지미상
  • 주요 관직회령첨사|경상병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동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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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회령첨사, 경상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학자.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경개(景蓋). 호는 석계(石溪). 아버지는 군자감직장인 송상장(宋尙長)이며, 어머니는 동복오씨(同福吳氏)로 찰방 오익후(吳益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9년 향시(鄕試)를 거쳐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학록(成均館學錄)에 임명되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의 모함을 입어 삭과(削科)되었다. 그 뒤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었다가 얼마 뒤 회령첨사(會寧僉使)를 지내고 경상병사가 되었다.

신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일시 고향에서 휴양하고 있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각지로 격문을 보내 의병 수만 명을 모은 뒤 부사를 지낸 나적(羅迪)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장이 되어 장성으로 진군하였다.

그 때 적군이 남원성을 포위하고 있어 군량이 부족하므로 여러 군에 격문을 보내 의곡(義穀) 800여 섬을 얻어 군량을 확보하고, 남원성으로 진격하여 적장 7인을 베고 전사하였다. 그 뒤 나라에서는 그의 전공을 높이 치하하여 병조참판의 증직을 내렸다. 저서로는 『석계결고(石溪缺稿)』 4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석계결고(石溪缺稿)』

  • - 『휴암집(休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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