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수레는 크게 발전되어 있어서, 『삼국사기』 거기조(車騎條)에서는 그 꾸밈의 사치스러움을 제약하는 법규를 정했을 정도이다.
따라서 집의 형편에 따라 여러 채의 수레를 지니기도 하였을 것이니 이를 보관하기 위한 수렛간이 설치되게 되었다. 수렛간의 모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다. 통일신라·고구려·조선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차츰 퇴보하여 수레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적어졌고, 짐을 실어 나르는 수레만이 제작되게 되었다.
따라서 짐수레를 보관하기 위한 헛간이 지어졌는데, 이것은 사람이 타던 수레를 간직하던 수렛간에 비할 수 없는 소박한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