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필사본. 정조는 젊어서부터 의방서를 즐겨 읽어왔고, 선왕인 영조가 아플 때 10년 동안이나 친히 옆에서 모셨으며, 자신이 병이 났을 때에도 스스로 의약(議藥: 의약처방을 논의함)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의(醫)는 군생(群生)을 구제하는 것이므로 사친자(事親子: 어버이를 모시는 아들)가 가히 의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의가 어찌 천한 것이겠는가. 우리 동방풍속이 방술(方術: 방법과 기술)에 종사하기를 부끄러워한다. 이것이 어찌 숭유(崇儒)의 소이겠느냐. 의도 또한 유술(儒術) 중의 일단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의서를 탐독하여 병술년(丙戌年)부터 병신년(丙申年)까지 선대왕의 질병을 시측(侍側: 옆에서 모심)하기 위하여 대(帶)를 풀지 않던 10년 동안에 맥결약성(脈訣藥性: 진맥의 비결과 약의 성품)에 방통(旁通: 자세히 앎)한 바 있다. 그러나 인품의 금고(今古)가 다르고 동서의 풍기(風氣: 풍속)가 같지 않다. 고금의 의서 중에 우리나라의 소용에 적합한 것은 오직 양평군(陽平君)허준(許浚)의 『동의보감』 하나뿐이다. 그러나 논리논방(論理論方)이 서로 착잡하여 체례(體例: 체제와 사례)가 정제(整齊: 정연함)함이 결여되어 있다. 내가 그 예를 좀 고쳐 그 정화(精華)를 찰(擦)하고 또 탕액(湯液) 각방으로써 따로 속편을 만들어 ‘수민묘전’이라 이름하였다.”라고 적혀져 있다.
즉, 정조는 우리나라 옛 풍속이 방술을 천하게 여기는 것을 개탄하고 허준의 『동의보감』 중에서 우리의 풍습에 적합한 것을 친히 선집하여 각 병문들의 증론(證論)과 맥결(脈訣)을 중심으로 『수민묘전』 4권을 초록하고 속편으로 탕액 제방들의 치료법 5권을 편성하였다.
속편 5권은 이미 산일되고 다만 『수민묘전』 4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고, 정조의 시문(詩文)·윤음(綸音: 임금의 말씀)·교명(敎命: 왕비·세자를 책봉하는 임금의 명령) 등을 편집한 『홍재전서(弘齋全書)』 중에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