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가 성행하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정재의 전통과 함께 수악절창사의 전통이 잘 지켜졌으므로 「오양선정재」등의 춤에서 그 예를 많이 찾을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오직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에만 「수악절창사」가 따른다.
이 창사는 향악화된 「관악보허자」에 맞추어 부르는데 전단 7구는 초장의 선율에, 후단 7구는 2장의 선율에 각각 얹어 부른다. 윤용구(尹用求)가 지은 『국연정재창사초록(國讌呈才唱詞抄錄)』에 의하면, 사설면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전단의 끝 구절인 ‘미미류’가 ‘세세류(細細柳)’로, 후단 ‘노채의’가 ‘구여송(九如頌)’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은 조선 후기에 변화한 『국연정재창사초록』을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