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려 말의 청백리 최석(崔碩)의 송덕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1281년(충렬왕 7)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이 비서랑(秘書郞)으로 전직하자 마을사람들은 예전의 관례에 따라 말 8필을 기증하였는데, 최부사는 상경 후 기증받은 말 8필과 최부사의 암말이 승평부에서 낳은 망아지 1마리를 보태어 9필을 다시 돌려보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 뒤부터 부사가 오고갈 때의 이런 관폐가 없어졌다. 이에 주민들은 그의 송덕을 기려 비를 세우고 이름을 팔마비라 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1617년(광해군 9) 승주부사 이수광이 복원하였다.
전면은 '八馬碑(팔마비)'가 안진경풍의 해서로 양각되어 있는데 글씨는 진사 원진해(元振海)가 썼다. 비의 후면은 이수광이 짓고, 동지(同知)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원래 이 비는 남문 연자교 옆에 있었으나 하천공사로 현 위치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