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양장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도림산 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농경관련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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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도림산 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농경관련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개설

무안 양장리 유적은 전방은 도림산 남동쪽으로 영산강 본류가 흐르고 있으며, 뒤편으로는 노령산맥 줄기에서 뻗어내린 승달산(317.7m)이 위치해 있다.

승달산에서 흘러내려온 작은 가지성 구릉이 유적의 양편으로 자리하고 그 중앙에는 곡간평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은 곡간평지와 양쪽 구릉에서 수혈주거지 37기, 수혈유구 12기, 지상건물지 10기, 팔각건물지 1기, 인공수로, 저습지 등이 조사되었다.

내용

수혈주거지는 곡간평지의 동쪽편과 양편 구릉사면에서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대부분 방형·장방형으로 화덕시설이 확인되고 있으며, 내벽을 따라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규모는 대부분 3∼5m 내외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94-9호의 경우는 직경 10m 전후의 크기로 가장 대형에 속한다. 출토유물은 발형토기와 첨저형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완형·파수부·시루형토기 등이 있다. 축조시기는 4∼5세기대가 중심을 이룬다.

수혈유구는 주거지가 분포된 지역에서 고루 분포되어 확인되었다. 그러나 유구의 형태가 대부분 파괴되고 바닥면 일부만이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부정형이 다수를 이룬다. 주거지와는 달리 화덕시설이나 배수도랑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유물은 주로 토기편들만이 수습되었다. 축조시기는 주거지와 동일하거나 약간 늦는 것으로 보인다.

지상건물지는 주거지가 폐기된 후 만들어진 것으로 다지구 구릉 사면의 말단부에 군집되어 노출되었다. 주거지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집중된 지상건물지는 1칸×1칸이 주를 이룬다. 출토유물은 발형·완형토기를 비롯해 방추차, 어망추 등이 있다. 축조시기는 6∼8세기대로 보인다.

팔각건물지는 지상건물지가 노출된 상층부에서 확인되었다. 중앙에 놓인 하나의 초석을 중심으로 주변에 8개의 초석이 방사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규모는 직경 6.4m 정도이며, 건물지 남서편으로는 호석열이 둘러져 있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축조시기는 8세기 후반경으로 보인다.

인공수로는 나지구 주거지군의 서쪽편에 인접해 확인되었다. 저습지와 주거지군을 경계짓는 수로는 모두 3열이 노출되었다. 주거지와 동시기에 이용된 수로의 길이는 약 70m 정도이며, 폭은 3∼4m 전후로 남북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수로는 인공적으로 호를 판 후, 한 쪽 경사면을 따라 말목을 세워 이용하였다. 또한 수로 내부에는 후대에 퇴적된 것으로 보이는 토기·석기·목기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함몰되어 있었다. 축조시기는 주거지와 동일한 4∼5세기대로 보인다.

저습지는 나지구 서쪽편에서 확인되었다. 환원환경 상태에서 퇴적이 이루어진 흑갈색계통의 니탄층 내에서는 농경에 관련된 시설물로 보이는 호안시설이나 방책시설물로 보이는 목제구조물과 더불어 다량의 목제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목제유물은 농구류를 비롯해 용기류·생활용품류·건축부재·용도불명품 등으로 나뉜다. 가공된 말목류는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저습지에서는 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이 공반출토되었다. 볍씨·박씨·복숭아씨 등의 씨앗류들도 다량으로 검출되었다.

저습지는 출토유물과 탄소연대측정 등을 통해볼 때, 청동기시대로부터 백제시대 초까지 계속적으로 퇴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중심 연대는 4∼5세기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유구와 유물을 통해볼 때, 양장리 유적 일대는 청동기시대로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일정한 규모의 취락이 지속되었다.

특히, 4∼5세기대에 만들어진 주거지·수로·농경관련시설 등은 영산강유역 대형옹관묘 축조집단이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것을 밝혀줌으로써 당시의 생활사나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참고문헌

『무안 양장리 유적』(이영문·이영철, 목포대학교박물관, 1997)
「무안 양장리 유적조사보고」(이영철, 『한국고고학의 반세기』, 한국고고학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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