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정3품의 관직.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또한 왕명을 전선(傳宣)하는 임무도 맡았다. 전선은 사례에 따라 조지(詔旨)를 그대로 전달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선유(宣諭)의 형태로 군왕의 의사를 대변하였다. 이 때 승선은‘한마디〔片言〕라도 감히 자발(自發)하지 못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임무로 인해 용후(龍喉) 또는 후설직(喉舌職)이라고도 하였다. 또 왕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간쟁(諫諍)이나 전주(銓注)에도 많이 관여하였다.
특히 무신집권 이후 정방(政房)이 설치되면서부터는 공식적으로 인사행정을 맡아 큰 권한을 행사하였다. 물론 정방의 승선과 중추원의 승선을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라는 논의가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승선은 직임이나 성격상 학식이 높고 언어가 분명하며 행실이 민첩, 단정한 인물에서 선발되었다. 그러므로 대개는 과거에 합격하고 가문이 좋은 사람이 임명되었으며, 명예롭고 장래가 보장되는 추요직(樞要職)의 하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목은시고(牧隱詩藁)』
- 「고려(高麗)의 중추원(中樞院)」(변태섭, 『진단학보(震檀學報)』 41, 1976)
- 「고려(高麗)의 중추원연구(中樞院硏究)」(박용운,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12, 1976)
- 「충선왕(忠宣王)의 개혁(改革)과 사림원(詞林院)의 설치(設置)」(이기남, 『역사학보(歷史學報)』 52, 197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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