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의 대표적 장편소설의 하나로 1964년 현암사에서 간행하였다. 「시장과 전장」은 베스트 셀러로서 문단의 선풍을 일으키는 등 전쟁문학의 수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분단된 국토에 불안한 긴장이 감도는 한국전쟁 얼마 전, 기석과 결혼하여 아이들까지 있는 지영은 서울을 떠나 혼자 38선에 가까운 중학교의 교사로 취직되어 간다. 한편 서울에서 테러의 지령을 받고 암약하는 남로당원 기훈은 거리에 쓰러진 가냘픈 여인 가화를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지영의 남편은 납북되고 기훈은 인민군으로, 이때부터 민족의 수난은 펼쳐진다.
평범한 에고이스트로 전쟁의 상처를 뼈저리게 느끼는 지영, 강인한 공산주의자에서 이탈한 순진한 석산 선생, 허황한 이상주의에서 변절하는 덕삼, 선량한 여교사 정순이 등, 이런 모든 사람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한국전쟁이 배경이 되어 더욱 절실감을 불러일으켰고 가화(嘉禾)란 한 여성이 겪어온 비극을 파노라마처럼 엮어간 것이기도 했다.
종래의 전쟁물이 판에 박은 듯 공식성과 도식성을 벗어나지 못한데 비해서 이 작품은 본격적인 세계를 대담하게 파헤친 역작이다. 결국 전장은 죽음과 부정, 시장은 삶과 긍정을 상징하게 하였고, 6·25를 주제로 하여 전쟁을 정면에서 가깝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다루었다. 즉 전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객관화할 수 있었다는 데서 더 귀중하게 해석되었다.
「시장과 전장」의 서문에서 ‘마지막 장을 끝낸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족들 몰래 울었다’고 고백했던 작가는 숙연한 독백을 털어놨다. “이젠 안 웁니다. 허탈과 고생의 울분 같은 것이겠지만 역시 감정의 찌꺼기지요. 그때도 역시 제 자신이 작품 안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완전히 ‘쟁이’가 되어 객관적으로 쓰겠습니다.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자신을 다루어 아무 찌꺼기도 남기지 않겠어요.” 이 작품으로 1965년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