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보유자 손한술(孫漢述)은 1925년 신안군 암태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48년 목포에서 시조창에 입문하였다.
그 당시 목포에는 정재복(1919년 영암 출신), 성길주(목포출신. 정재복보다 3살 더 연배) 및 정해암이 출입하는 노인방이 있어 이들의 소리를 익히고 함께 연마하였다. 이들은 정경태를 리더로 하는 전국 시우단체 총연합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손한술은 1975년부터 이 단체 지방조직의 한 책임자로 나서게 되었다.
정재복은 「푸른산중아」와 같은 「지름엮음」을, 성길주는 「어화청춘 소년들아」 등을 잘 불렀다. 손한술은 「명년삼월 오시마더니」·「세상공명」·「소년행락」 등을 즐겨 불렀으며, 1960년부터 7, 8년간 대전의 연정국악원에서 시조를 가르쳤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목포의 시립국악원에서 시조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도 주로 목포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는 완제시조에 대해 좀더 맛을 내며 부르는 시조창이라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