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신환(申桓)·신두흥(申斗興). 충청북도 청원 출생.
1912년 4월에 중국 저장성[浙江省] 성립 의약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신규식(申圭植)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국내에 밀파되어 정보수집과 군자금 등을 모집하면서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취한 뒤 상해로 귀임하다가 신의주에서 미행하던 일본경찰에 잡혔다.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중에 신병치료를 이유로 낸 병보석이 허가되어 석방과 동시에 상해로의 귀임을 모색하던 중 다시 잡혀 청주에서 복역하였다. 1922년 마침내 망명에 성공하여 1925년에 저장성 육군형무소의 군의관으로 임명되어, 봉직하였다.
1928년 중국군(中國軍) 중교(中敎)로 군의학교 외과주임에 임명되었으며 난징[南京]의 우리 동포를 지원하면서 다시 정부의 활동을 조력하였다. 1937년 임정요인 엄항섭(嚴恒燮)을 도와 선전업무에 진력하면서, 국내외 동포에게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호소하였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31회 회의에서 충청도대표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원에 이어 1943년 3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차장에 임명되어 재정문제 해결에 힘썼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