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백술(伯述), 호는 구계(龜溪). 아버지는 신팽년(辛彭年)이다.
1603년(선조 36) 진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에는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다. 1618년에 수찬·교리를 거쳐 사간에 올랐다.
수찬으로 있을 당시 폐모에 대해 백관이 모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의와 예의를 절충하면 은(恩)과 의(義)의 경중에 따라 스스로 대처할 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대북당(大北黨)인 허균(許筠)의 심복이 되어 김개(金闓)와 함께 폐모론에 동조하였다.
인조반정 후 옥사에 관련되어 귀양가서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 울타리로 죄인을 가둠)되었다가 이이첨(李爾瞻)의 당으로 몰려 반역죄로 복주(伏誅: 형벌에 따라 죽임)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