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초에 북경으로 망명한 박정래(朴正來)가 중심이 되어 이곳 교민들 사이에 독립운동단체 조직의 필요성이 제고되고 있음을 알고 서서히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에 최우(崔愚)도 인식을 같이하고 박정래와 함께 북경의 각 구를 방문하면서 20여명의 동포를 규합하여 1919년 3월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이 모임에서 박정래와 최우가 각기 정·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이어 회장단은 총무에 이상만(李象萬)을 영입하여 이후 독립운동을 위한 여러 문제를 협의하였다. 중국정부와의 외교접촉과 개별공세를 취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외곽단체로서의 임무를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