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평안북도 박천(博川) 지역의 옛 지명.
명칭 유래
자연환경
형성 및 변천
뒤에 태주·무주·위주를 분리하였고, 원나라의 지배 하에서는 동녕로총관(東寧路摠管)의 관할하에 있었다. 1278년(충렬왕 4)에 원나라로부터 되찾았고, 1371년(공민왕 20)에 박주를 독립시켰다. 조선 태종 때 가산군(嘉山郡)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박천군에 합쳐 가산면이 되었다.
조선 말기 홍경래(洪景來)의 난의 시발지로 가산성이 한때 점령당한 적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이 국경지대이어서 군사적으로 중요시되던 곳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의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당시에는 봉두산(鳳頭山)에 옛 성이 있었고 망해산봉수(望海山烽燧)와 가평역(嘉平驛)·산창(山倉) 등의 시설이 있었다.→박천군
참고문헌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선향토대백과』, 6·① (평화문제연구소, 2005)
- 『북한관광요람, I』 (북한관광요람 편찬위원회, 한국일보 멀티미디어,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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