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군왕릉

  • 역사
  • 유적
  • 남북국
  • 시도자연유산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
이칭
  • 이칭김주원 무덤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조선 중기
  • 관련 국가통일신라
  • 관련 인물김주원
  •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 양식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창석 (강원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0월 1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정의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

건립경위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조선 중기에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김주원이 강릉에서 사망하여 묻혔을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의 명주군왕릉이 원래의 무덤 자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변천

무덤의 주인으로 알려진 김주원은 신라 중대 말~하대 초에 활약한 인물이다. 선덕왕(宣德王)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김주원은 무열왕의 직계 후손이었으나, 내물왕계인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원도 강릉으로 퇴거하였다. 강릉은 옛 하슬라주로서 신라 중고기 이래 영동 지역을 통제하는 거점이었다.

원성왕으로 즉위한 김경신은 김주원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명주군왕으로 책봉하고 동해안의 여러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지정해 주는 등 우대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김주원의 후손들이 대대로 강릉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주원의 무덤이 강릉에 있었음은 분명하나, 원래 무덤의 위치는 기록이 없고 고고학 조사도 이루어진 바 없다.

형태와 특징

묘역은 계단식으로 조성되었는데, 무덤 두 기가 위아래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두 무덤 모두 평면이 장방형이고 둘레는 다듬은 판석으로 감쌌다. 아래쪽 무덤 앞에 상석, 장명등, 망주석, 동자석 등 석물을 배치하였다.

금석문

아래쪽 무덤 앞에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지묘(金周元之墓)’를 새긴 묘비가 있다. 무덤 오른편으로 팔작지붕 모양의 머리를 올린 다른 비석이 있는데, 전면에 ‘명주군왕지묘(溟州郡王之墓)’라고 새겨졌다.

참고문헌

  • 원전

  • - 『강릉김씨세보(江陵金氏世譜)』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 『여지도서(輿地圖書)』

  • - 『증수 임영지(增修 臨瀛誌)』

  • 논문

  • - 김흥삼, 「신라말 崛山門 梵日과 金周元系 관련설의 비판적 검토」(『韓國古代史硏究』 50, 2008)

  • - 김정숙, 「金周元世系의 成立과 變遷」(『白山學報』 28, 1984)

주석

  • 주1

    : 신라의 제29대 왕(602~661). 성은 김(金). 이름은 춘추(春秋). 묘호는 태종(太宗). 율령을 정비하고,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재위 기간은 654~661년이다. 우리말샘

  • 주2

    : 신라 제38대 왕 ‘원성왕’의 본명. 우리말샘

  • 주3

    : 신라의 구주 가운데 지금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 둔 행정 구역. 태종 무열왕 5년(658)에 설치하였다가 경덕왕 16년(757)에 명주(溟州)로 고쳤다. 우리말샘

  • 주4

    : 사내아이의 형상을 새겨서 무덤 앞에 세우는 돌. 우리말샘

  • 주5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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