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조운산(趙雲山). 본관은 평산(平山).
1919년 3·1운동 당시 청년단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1920년 만주로 망명하여, 아버지 우현(禹鉉)과 조병준(趙秉準) 밑에서 임시정부 연통제 통신원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의군부(義軍府)에 가입하는 한편, 1935년 중국 군관학교 뤄양분교[洛陽分校]를 졸업하고,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특파원으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황학수(黃學秀)·공진원(公震遠) 등과 더불어 지청천(池靑天)의 지령으로 중국 중앙정진군 마점산부대(馬點山部隊)에 편입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뒤 계속 만주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9년 국군에 입대, 대한민국 국군의 기초토대를 쌓는 한편, 군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