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량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한성부참군, 공조좌랑, 구례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양지(湸之)
  • 호은(湖隱)
인물/전통 인물
  • 본관고령(高靈)
  • 사망 연도1663년(현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부참군|공조좌랑|구례현감
  • 출생 연도1596년(선조 2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갑균 (청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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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참군, 공조좌랑, 구례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양지(湸之), 호는 호은(湖隱). 가평군수(加平郡守) 신여주(申汝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신벌(申橃)이고, 아버지는 좌부승지 신응거(申應榘)이며,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로 오희문(吳希文)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총명하여 조수륜(趙守倫)에게 학문을 닦고 사마시에 합격, 사산감역(四山監役)이 되고, 뒤에 우수운판관(右水運判官)·한성부참군·공조좌랑·구례현감을 지냈으며, 남포(藍浦)의 전사(田舍)에 우거하였다.

그 뒤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금산군수·호조정랑을 사양하였으며, 1648년(인조 26) 태안군수 재직시 남징문제(濫徵問題)로 사직하였다. 효종 때 군기시(軍器寺)·제용감(濟用監)·군자감(軍資監)·예빈시(禮賓寺)의 정(正)을 지냈다.

저서로는 『호은집(湖隱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명제유고(明齊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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