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 1351년 공민왕(恭愍王)의 즉위와 함께 소부주부(小府注簿)가 되었으며,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시종하였던 공으로 이듬해 연저수종(燕邸隨從) 3등공신에 봉해졌다. 1361년(공민왕 10) 2차로 홍건적(紅巾賊)이 침입하자 방어전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개경 수복작전에 공을 세움으로써 1363년 2등공신이 되었다.
1373년 한양부윤(漢陽府尹)으로 재임중, 당시 전국각처에 창궐하던 왜구들이 한강·예성강 일대에 집결, 연안 각지를 침략하고 한성부(漢城府)에까지 이르러 민가에 방화하고 백성들을 살육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 왜구를 막지 못하였다 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일시 봉졸(烽卒)로 쫓겨났다가 다시 등용되어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다. 1379년(우왕 5) 전공을 믿고 권세를 부리던 찬성사(贊成事) 양백연(楊伯淵)이 당시의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에 의하여 주살될 때, 그와 친구가 된다 하여 고향으로 쫓겨남으로써 숙청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