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원서(元瑞) 또는 군서(君瑞), 호는 묵재(默齋) 또는 적안(適安). 첨정(僉正) 신암(申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 신민일(申敏一)이고, 아버지는 부사 신상(申恦)이며, 어머니는 이흥인(李興仁)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1665년 지평(持平)·장령(掌令)을 지내고 이듬해인 1666년에는 전라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바 있으며, 이어 정언(正言)·헌납(獻納) 등을 거쳐 1667년 남해로 유배되었다. 1669년 집의에 이르고, 이어 사간·부수찬 등 주로 대간을 역임하였다.
1673년 산릉도감낭청(山陵都監郎廳)이 되어 영릉(寧陵)을 옮길 때 석역(石役)의 감독이 태만했다는 죄로 박천·강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1683년(숙종 9)에 풀려났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1725년(영조 1) 진도 유생 박제현(朴齊賢) 등의 상소로 봉암사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묵재기문록(默齋記聞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