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신호위 섭장군, 친종장군, 천우위대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같은 해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을 거쳐 이듬해 1174년 흥화도(興化道)에 감세사(監稅使)로 파견되었다가 서경에서 조위총(趙位寵)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前軍兵馬判官)으로 출전하였다. 이때 정부의 제군(諸軍)이 흩어져 물러났음에도 휘하를 이끌고 안북부(安北府)에 들어가 이를 지켰고, 연주성(連州城)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는 등 전공을 세워 용호군(龍虎軍)의 중랑장(中郎將)으로 승진하고 동궁(東宮)을 호위하였다.
1176년 신호위(神虎衛)의 섭장군(攝將軍)이 되고, 이듬해 충주(忠州)에서 민란을 진압하였으며 곧이어 조위총의 세력이 서경에서 다시 움직이자 이를 진정시킴으로써 친종장군(親從將軍)이 되었다. 1179년 관직이 천우위대장군(千牛衛大將軍)에 이르렀을 때 치사(致仕)하였다. 성격이 원만하고 도량이 넓었다하며, 만년에는 불교를 깊이 신봉하였다. 1187년에 작성한 묘지명(墓誌銘)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국금석문추보』(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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