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천안(天安). 조상은 대대로 호장(戶長)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검교대장군행산원(檢校大將軍行散員) 신적(申迪)이다.
인종(仁宗) 때 군에 들어가 1147년(의종 1) 대정(隊正)이 되었으며, 그 뒤 교위(校尉)·산원(散員)·별장(別將)·낭장(郎將) 등으로 승진하였다. 1170년 무신란(武臣亂) 때에는 동북면(東北面)에서 방수(防戍) 중이어서 난에 가담하지 않았다. 1173년(명종 3)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의 반무신란(反武臣亂) 이후 다수의 문신이 무신들에 의하여 해를 입었으나 이때에도 가해에 참여하지 않았다.
같은 해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을 거쳐 이듬해 1174년 흥화도(興化道)에 감세사(監稅使)로 파견되었다가 서경에서 조위총(趙位寵)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前軍兵馬判官)으로 출전하였다. 이때 정부의 제군(諸軍)이 흩어져 물러났음에도 휘하를 이끌고 안북부(安北府)에 들어가 이를 지켰고, 연주성(連州城)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는 등 전공을 세워 용호군(龍虎軍)의 중랑장(中郎將)으로 승진하고 동궁(東宮)을 호위하였다.
1176년 신호위(神虎衛)의 섭장군(攝將軍)이 되고, 이듬해 충주(忠州)에서 민란을 진압하였으며 곧이어 조위총의 세력이 서경에서 다시 움직이자 이를 진정시킴으로써 친종장군(親從將軍)이 되었다. 1179년 관직이 천우위대장군(千牛衛大將軍)에 이르렀을 때 치사(致仕)하였다. 성격이 원만하고 도량이 넓었다하며, 만년에는 불교를 깊이 신봉하였다. 1187년에 작성한 묘지명(墓誌銘)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