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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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남
신석남
민간신앙
인물
해방 이후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강릉단오제」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30년
사망 연도
1990년
본관
평산(平山)
출생지
경상북도 울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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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강릉단오제」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내용

본관은 평산(平山). 경상북도 울진 출생. 보유종목은 무가(巫歌)이며, 1989년에 인정되었다. 세습무녀이며, 할아버지 때부터 무업(巫業)을 하여왔다.

강릉단오제의 전 기예능보유자 박용녀(朴龍女)와는 동서지간이며 동해안별신굿의 기예능보유자인 김석출(金石出)은 그의 남편 김용출(金龍出)과 사촌간이다. 처녀시절에는 경주 권번에서 민요와 판소리를 2년 정도 학습하다가 김용출을 만나 권번을 나오게 되었다.

18세 때 그와 혼인한 뒤 무업을 시작하여 죽기 전까지 동해안일대에서 무업을 하여왔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 15일 대관령국사서낭당에서 서낭을 모시고 하산하는 데서부터 무녀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며, 여서낭당에 합사한 뒤에도 조석으로 굿을 한다.

단오를 4, 5일 앞서 여서낭당에서 굿을 하고 서낭 내외를 굿당으로 옮긴 뒤 단오날까지 매일 굿이 연속되기 때문에 많은 무녀들이 동원되고 악사들도 교대로 반주를 해야 하는데 주무로의 역할을 잘하였다.

단오굿 12거리를 모두 잘했으며 특히 사설이 가장 길고 원숙한 무녀만이 할 수 있는 심청굿을 완벽하게 해냈다. 또 동해안지역의 사령굿인 오구굿 중에서 초망자굿을 잘하여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데 능했다.

차분한 성격에 단정한 용모를 갖춘 그는 무가를 잘 암송하였을 뿐만 아니라 춤을 잘 추었는데, 특히 등을 약간 굽은 듯한 자세로 납신납신 추는 춤은 일품이었다.

춤과 사설, 소리가 뛰어나 무녀로서 최고의 경지에 있었다. 무격 일가족으로 동생, 아들, 며느리가 모두 굿에 참여하고 있으며 며느리 빈순애(賓順愛)를 계승자로 전수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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