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여방(汝舫). 평안남도 평원 출신.
1915년 서울에서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8년에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하여 교포들의 진료와 민족사상 고취에 힘썼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 그곳 교포들을 격려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관심이 있는 유동열(柳東說)·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 독립운동을 제도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어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서 상해·난징[南京] 등 중국 각지로 전전하면서 독립운동방략을 모색하였고, 이듬해에는 중국 항공창(航空廠)의 군의관으로 활약하였다. 1932년 신익희(申翼熙) 등과 조선혁명당을 조직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때에는 중앙군총사령부 군의관으로 난징·한커우[漢口]·완현[萬縣] 등지를 거쳐 충칭[重慶]으로 가서 임시정부의정원 평안남도대표의원에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