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공조판서, 좌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고, 영천군(寧川君)에 봉하여졌다. 그 뒤 함경도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가 되었는데, 탐오하고 군무에 소홀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박원종 등의 구원으로 4개월 만에 다시 서용되었다.
그 뒤 공조판서를 거쳐 좌우참찬을 지내고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대간들의 탄핵으로 다시 파직되었다. 이 때 역시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된 박영문(朴永文)이 울분에 못 이겨 자주 신윤무의 집을 찾아와 조정을 비방하고 난언을 많이 하였다.
신윤무는 늘 박영문에게 시기가 아니라며 타일러서 말렸으나, 이와 같은 사실을 엿들은 의정부의 노비 정막개(鄭莫介)의 고변으로 주살되고, 두 아들 신공(辛恭)·신검(辛儉)은 모두 교살당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음애집(陰厓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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