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선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봉황의 면류관」, 「들쥐」, 「먼동이 틀 때」 등에 출연한 배우.
이칭
  • 이칭신삼순(申三順)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90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907년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현목 (동국대학교, 영화연출)
  • 최종수정 2024년 04월 0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봉황의 면류관」, 「들쥐」, 「먼동이 틀 때」 등에 출연한 배우.

내용

본명은 신삼순(申三順). 서울출신. 동덕여자의숙(현 동덕여자고등학교) 3학년 재학중 오빠 창운(昌雲)의 적극적인 권유와 주선으로 조선예술가극단(朝鮮藝術歌劇團)에 입단하였다.

또한, 문수성(文守星)극단에서 무대 활동을 하던 중 1926년나운규(羅雲奎) 감독의 「아리랑」에 발탁되어 영진(나운규 분)의 누이동생 영희역에 출연하여 인기를 모았다.

같은 해 이경손(李慶孫) 감독의 「봉황의 면류관」에 출연하였고, 1927년김수로(金壽魯) 감독의 「괴인의 정체」와 나운규 감독의 「들쥐」 · 「금붕어」 및 심훈(沈熏) 감독의 「먼동이 틀 때」에 출연하였다.

이 무렵 호남갑부의 아들 양승환(梁承煥)과 혼인하였으나 7년 만에 이혼하고, 1934년 안종화(安鍾和)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와 1935년 「은하수에 흐르는 정열」에 출연하였다.

1936년 재혼과 더불어 「아리랑」 제 3편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하였다가, 1957년 김소동(金蘇東) 감독이 나운규 20주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아리랑」에 단역으로 출연한 뒤 완전히 은막에서 은퇴하였다.

첫 혼인의 실패와 연기의 슬럼프 속에 오케레코드 서울지사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일본 대판(大阪)으로 건너가 「무너진 사랑탑」 등 10여 곡을 취입하여 한때 가수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이후 경상북도 청송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1982년 서울로 올라온 뒤 뇌졸중으로 작고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영화발달사(韓國映畵發達史)』(유현목, 한진출판사, 1980)

  • - 『한국영화총서(韓國映畵叢書)』(한국영화진흥공사, 1972)

  • - 「남기고 싶은 이야기-무성영화시대-」(신일선, 『중앙일보』, 197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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