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신우(申隅). 자는 정우(正宇), 호는 남강(南崗). 전라남도 곡성 출신.
1908년 3월 전라남도 의병장 조서화(趙書華)의 부대에 입대하여 지휘관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4월 전라남도 구례에서 일본군 및 일본 기병경찰대와 교전하였으며, 6월에는 마륜산(馬輪山) 속에서 일본기병대 소속 군인 2명을 기습 공격하여 사살하였다. 9월에는 곡성 목사동(木寺洞)에서 일본수비대 10여 명과 교전하였는데, 이 때 병력 130명 중 의병장 조서화 이하 2명이 전사하였다.
의병장의 전사로 인하여 이후부터 독립하여 구례·곡성·낙안·남원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1월에는 목사동 평리에서 40명의 동지를 지휘하여 일본군과 교전 끝에 패하여 부하 5명을 잃고 동미동으로 피신하였으나 붙잡혔다.
구금중 조금도 굽히는 기색이 없이 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하고 의거의 당연함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10월까지 구례·광주·목포를 거쳐 대구로 이감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