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언시(彦施), 호는 나헌(懶軒). 공조참의 신포시(申包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제학 신장(申檣)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로 증영의정부사 윤경연(尹景淵)의 딸이다.
1470년(성종 1) 종5품 부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병조참지에 특별히 발탁되었고, 이듬해 좌리공신 4등에 책록되었다. 그뒤 병조참의를 거쳐 1477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로부터 성종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같은 해에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승진하였다. 이듬해에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고양군(高陽君)에 봉해졌다.
이어서 다시 이조참판이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뒤 예조참판을 거쳐 1486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이조판서가 되고 공조판서를 거쳐 그 뒤 우참찬·평안도관찰사·한성부판윤 등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군 1)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다시 공조판서가 되고 이어 형조판서가 되어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하였다. 그뒤 대사헌을 거쳐 세번째로 공조판서와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우참찬·좌참찬을 지내면서 언로의 개방 등 시무 10조를 진언하였다.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중종반정을 단행하자 이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품계가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오르고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시호는 소안(昭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