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익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백거(伯擧)
  • 소은(素隱)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거창(居昌)
  • 사망 연도1661년(현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홍문관부제학|대사간|이조참의
  • 출생 연도1592년(선조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수건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신천익 글씨 미디어 정보

신천익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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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 호는 소은(素隱). 참의 신희남(愼喜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여경(愼餘慶)이고, 아버지는 진사 신인(愼諲)이며, 어머니는 이용(李溶)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진사시에 합격,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15년 홍문관정자를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는데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사직하고, 전라남도 영암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홍문관·사간원의 요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54년(효종 5)에 다시 나와서 홍문관부제학을 지내고 대사간·이조참의가 되었다. 1659년에 당시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종2품관직에 인물이 부족하다 하여 당상관 중에서 등용할 수 있는 네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신천익이 그 중 한 사람으로 이조참판에 서임되고, 이어 한성부우윤에 특제(特除)되었다.

그 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한 뒤로는 시정(時政)과 시사(時事)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장과 시부(詩賦)에 능하여 송시열도 찬탄한 바 있으며, 아우 신해익(愼海翊)과 더불어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나랏일보다 사사로운 일에 더 힘을 기울였다 하여 당시 선비들 사이에 비난도 적지 않았다. 영암 영보사(永保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소은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영암읍지(靈巖邑誌)』

  • - 『조선고금명현전(朝鮮古今名賢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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