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54년(효종 5)에 다시 나와서 홍문관부제학을 지내고 대사간·이조참의가 되었다. 1659년에 당시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종2품관직에 인물이 부족하다 하여 당상관 중에서 등용할 수 있는 네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신천익이 그 중 한 사람으로 이조참판에 서임되고, 이어 한성부우윤에 특제(特除)되었다.
그 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한 뒤로는 시정(時政)과 시사(時事)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장과 시부(詩賦)에 능하여 송시열도 찬탄한 바 있으며, 아우 신해익(愼海翊)과 더불어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나랏일보다 사사로운 일에 더 힘을 기울였다 하여 당시 선비들 사이에 비난도 적지 않았다. 영암 영보사(永保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소은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암읍지(靈巖邑誌)』
- 『조선고금명현전(朝鮮古今名賢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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