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상이 사회생활에서 실천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양태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불법의 실천과 포교를 지향하고 있는 신앙결사 곧 신행결사다. 신행결사는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이 풍전등화의 어려움에 당면했을 때 그것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극복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제시하고자 할 경우에도 활력소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결사가 설립되는 목적은 불법에 대한 국가적 탄압이 시행되었을 때 불법의 탄압을 극복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평생에 걸쳐서 염불수행으로 정토의 극락세계에 가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한 신앙결사가 있으며, 함께 절차탁마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선수행을 지향하는 수선결사(修禪結社) 및 기타가 있다. 국가로부터 가해지는 법난(法難)을 극복하거나 불교 내부에서 부패와 타락을 쇄신하려는 경우를 비롯하여 순수하게 자기의 신앙과 수행을 도모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소기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홀로 개별적으로 실천하는 경우보다 대중이 모여서 일정한 지침과 규범을 정하고 눈밝은 지도자의 안내를 받아서 진행하는 단체의 잇점이 어떤 경우보다 효율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불교가 출현하던 초기에 승가를 형성했던 경우처럼 신행의 결사에는 항상 개인의 차원보다는 대중이 함께 실천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신행결사의 조직은 교단 내지 종단과 달리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불교운동이고, 목표를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규모로 결성되는 것이 상례였다. 또한 결사의 구성원에 있어서도 교단이나 종단의 조직이 출가자 중심의 구성인 반면에 결사의 구성원은 출가자와 재가자 내지 신분의 고하 및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부대중이 동참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찍이 도교에서는 장릉(張陵)이 조직한 오두미교(五斗米敎) 내지 장각(張角)의 태평도(太平道)를 신행결사의 시초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신행결사의 원류는 중국 동진시대 혜원(慧遠, 334~416)이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유유민(劉遺民) 등을 비롯한 동지 123명과 402년 7월에 정토왕생을 목표로 결성했던 백련결사(白蓮結社)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불교에서는 이후 정토를 비롯하여 천태신앙, 밀교신앙, 미륵신앙, 선종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갔다.
우리나라에서 출현했던 신행결사를 그 실제적인 내용으로 살펴보면, 염불수행을 통하여 정토왕생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가장 일반적인 염불결사가 있었고, 선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맺었던 수선결사가 있었다. 그리고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조」에는 오대산에 진여원을 개창하여 5명의 승려와 함께 효명태자가 행한 화엄결사(華嚴結社)도 있었다. 그러나 출현한 원인으로 보면 세가지 유형이 있었다. (1) 첫째는 국가로부터 불교가 탄압을 받았을 때 지하조직과 같은 형태로 결성된다. (2) 둘째는 교단이 타락하고 부패되었을 때 새로운 반성운동으로 결성된다. (3) 셋째는 동일한 신앙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결성이다.
신행결사가 출현한 원인의 유형 가운데, (1) 첫째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1980년 10월 27일 법난이 이에 해당한다. (2) 둘째의 경우는 고려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원묘요세(圓妙了世, 11631245)의 백련결사(白蓮結社)다. 정혜결사는 선수행결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원인으로 하나는 불법을 빙자하여 자신을 장식하고 이익에만 치중하며, 둘은 풍진세상에 빠져서 도덕을 닦지 않으며, 셋은 출가자 본연의 구도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정혜결사의 취지는 부패한 교단을 바로잡기 위해 출가자의 본분을 회복하여 수행정진에 매진하는 불교의 정신적인 혁신운동이었다. 백련결사의 경우도 그 출현 원인은 정혜결사와 다르지 않지만, 성격은 천태종의 결사에 속한다. (3) 셋째의 경우는 외부의 탄압이나 교단의 부패 등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불교신앙을 중심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결사한 경우다.
셋째의 경우에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① 하나는 순수하게 깨달음을 위한 수행 내지 정토왕생의 신앙심을 내적으로 승화하고 고취하려는 경우이고, ② 둘은 성과를 외부로 드러내어 복덕을 쌓는 제반의 불사가 중심이 되는 경우이다.
①의 경우는 공동의 불교 사상을 중심으로 동일한 수행 내지 신행활동을 통해서 성취하는 경우로서 정토신앙의 염불정진 내지 미륵신앙을 비롯하여, 화엄이나 법화나 선 등으로 대표된다. 그 신행활동으로는 염불, 수선, 주1, 독경, 사경, 주2, 예배, 참회 등이 있다. 염불정진의 일례는 가장 보편적인 결사로 전개되었다. 가령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시초는 강원도 건봉사에서 758년( 신라 경덕왕 17)에 발징화상(發徵和尙) 등 31명의 승려가 염불만일회를 개설하였는데 일반인들도 참여하였다. 한편 『삼국유사』 권5 「욱면비염불서승조」에는 아간귀진의 집에 욱면(郁面)이라는 여종이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염불로 왕생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만일염불(萬日念佛)이라는 결사가 보이는데, 만일염불결사의 방법은 중국이나 일본의 정토신앙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나라 정토신앙의 특수한 결사 형태에 속한다. 『삼국유사』 권5 「포산이성조」에 의하면, 고려시대 982년(성종 원년)에 성범(成梵)에 의해 포산(包山)에서 만일미타도량이 개창되었다. 성범은 50여 년 동안에 걸쳐 염불을 지속하였는데, 고을의 20여 명이 참여하여 성범에게 물질적인 보시를 하였다. 또 『고려사』 권10에 의하면 1092년(선종 9) 6월에 왕태후(王太后)가 백주(白州) 견불사에서 천태종의 예참법을 약 일만일(一萬日) 동안 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에게 염불향사(念佛香社)가 있었다. 한편 염불수행의 원만한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염불계(念佛契) 및 동갑계(同甲契) 등이 있었다. 18세기의 본격적인 만일염불결사는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임하록』 권3 「연지만일회서」에 보인다. 1802년 용허석민(聳虛碩旻)의 기록에 의하면 19세기에는 건봉사에서 만일염불회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실행되었다. 1851년에는 벽오유총(碧梧侑聰)이 만일염불회를 개설하였고, 1881년에는 만화관준(萬化寬俊)이 개성하였으며, 1908년에는 금암의중(錦巖宜重)에 의해 계승됨으로써 건봉사에서는 5차에 이르는 만일염불회가 개설되었다. 1848년에는 신계사 보광암에서 원유취봉(爰有鷲峰)에 의해 염불회가 결사되어 육시염불(六時念佛)이 실행되었다. 1858년에는 전남 미황사에서 영허의현(靈虛義玄)에 의해 염불회가 결성되어 고성염불(高聲念佛)이 실행되었다. 예참(禮懺)의 일례로는 오대산의 동대에서 관음방(觀音房)에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봉안하고 낮에는 『금광명경(金光明經)』 · 『천수경(千手經)』 등을 염송하였고, 밤에는 관음예참(觀音禮懺)을 행하였다. 미타신앙의 일례로는 서대에서 미타방(彌陀房)에 무량수불을 주존불로 봉안하고 낮에는 『법화경』을 염송하였고, 밤에는 미타예참(彌陀禮懺)을 행하였는데 결사의 명칭은 수정사(水精社)였다. 그리고 지장신앙의 일례로는 남대의 지장방(地藏房)에 지장보살을 주존불로 봉안하고 낮에는 『지장경』과 『금강반야경』을 염송하였고, 밤에는 점찰예참(占察禮懺)을 행하였다. 나한신앙의 일례로는 북대의 나한당(羅漢堂)에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봉안하고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을 염송하였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행하였다.
한편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은 선수행을 위한 수선결사(修禪結社)를 결성하고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을 지어서 수선결사의 이념과 규범을 제시하였다. 한편 20세기에는 용성진종(龍城震鐘, 18641940) 및 학명(鶴鳴, 18671929)에 의하여 선농불교(禪農佛敎)의 이념에 의해 수선과 노동을 함께 하는 선농결사(禪農結社)도 이루어졌다. 또 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과 청담순호(靑潭淳浩, 19021970)와 자운성우(慈雲盛祐, 19111992)가 중심이 되어 선수행결사로 봉암사결사를 일으킴으로써 현대 한국 불교의 선수행 정신을 고양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암중원(漢巖重遠, 1876~1951)은 1921년에 금강산 건봉사에서 선회(禪會)를 주관하였는데 이 경우도 결사의 성격에 속한다.
②의 경우는 복업을 목적으로 하여 종교적인 불사를 전개하는 까닭에 따로는 경제적인 보시나 노력봉사가 따른다. 그 행위로 사찰의 건립, 불상의 조성, 탑파의 건립, 범종의 조성 등 주로 불사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계(契)나 보(寶)를 만들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향도(香徒)의 결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신행결사는 불교의 역사에서 불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불법을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형태와 목적과 성격은 다양할 지라도 불심으로 불법을 성취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출가와 재가인을 가리지 않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결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행결사는 불법을 직접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일정한 규범과 수행의 방법을 기반으로 하여, 모임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그 목표를 이루려고 출발했기 때문에 사회의 이익집단과 달리 영속적이고 자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려 및 조선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염불과 참회와 선수행 등 불교의 전반에 걸쳐 결성되었다. 특히 만일염불회의 결사는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