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출신. 1910년 우리 나라가 일제에 강점되자 독립운동을 위하여 1913년 3월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에 가입하였다. 단장 신현구(申鉉九)의 권유로 그동안 모금한 독립운동 군자금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헌금하였다.
동시에 상해에 병원을 개업하여 막대한 수익금을 임시정부에 헌납하였다.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9개국 모임의 태평양회의가 개최될 때 임시정부 요인과 국내인사가 이를 지원하기 위하여 조직한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 간사로 선임되었다.
이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문제를 토의하도록 백방으로 주선하였으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해 충청도 대의사로 임시의정원에 진출하여 입법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1921년 11월 25일과 29일 대한적십자회 정기총회에서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 등 15인과 같이 상의원에 선임되었다.
1922년 10월 28일 임시정부 지원단체로 군인의 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조달을 목적으로 조직된 한국노병회의 이사를 지냈다. 1929년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귀국하였으며, 1942년 이른바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는 혐의로 잡혔다고 한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