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석(天錫), 호는 병담(屛潭). 아버지는 전농시사(典農寺事) 심승경(沈承慶)이다. 일찍이 무예훈련에 힘써 솜씨가 인정되어 이방원(李芳遠)을 호종하였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도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이방원을 호종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고 풍천군(豊川君)에 봉해졌다. 1406년(태종 6) 겸중군동지총제(兼中軍同知摠制)가 되었고 이어서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에 임명되었다.
당시 남해안 일대에 왜구가 침입하자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서 왜구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천추사(千秋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고 부진무(副鎭撫)·겸동지의흥부사(兼同知義興府事)를 역임하였다. 1410년 군령과 군기관리의 소홀이라는 혐의로 대간에 의하여 탄핵,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국왕의 신임이 두터워 이듬해에는 오히려 지의흥부사로 승진하였다.
이어서 별시위 일번절제사(別侍衛一番節制使)를 역임하였고,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직하고 사어(射御: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일찍부터 태종을 호종하였다. 신분은 비록 미천하였으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자신의 직임을 잘 알았으며, 부하들에 대한 통솔력도 매우 뛰어났다. 시호는 정양(靖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