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시대의 사찰이라고 전한다. 창건 이후 1575년(선조 8)에 중건하였고, 1705년(숙종 31)의 중수를 거쳐 1767년(영조 43)과 1825년(순조 25)에 중건하였다. 그 뒤 1875년(고종 12)에 단청하였고, 1934년에 영조(永祚)가 중건하였으며, 1978년에 정준(正俊)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5년 중건 시에 기와에 ‘만력 3년’(1575)라고 기록된 기와가 나왔으며, 내원당 앞의 석주, 법당 대들보 상량문 묵서 등을 통해 이후 중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중건한 지 수백 년이 된 요사채와 주지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큰 방, 내원당(內院堂), 어촌재(漁村齋) 등이 있다. 이 중 내원당은 수선실(修禪室)로 사용되고 있고, 어촌재는 600년 전부터 내려오는 공씨선묘(孔氏先墓)를 받드는 재실이다. 절 안에 재실이 있는 까닭은 주변의 산이 공씨 집안 소유지이기 때문이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1972년 보물로 지정된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대적광전 안에 봉안된 이 불상은 고려 말에 파주군 몽산포에 살던 천노인(千老人)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고 전한다. 천노인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끌어올리니 큰 돌이 올라왔으므로 생각 없이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자리를 옮겨 다시 그물을 쳤더니 그 돌이 또 걸려 올라왔다.
이상히 여겨 자세히 보니 불상이었으므로 육지로 모셔 와서 지게 위에 올렸는데, 불상이 너무나 가벼웠다. 모실 곳을 찾아 광덕산으로 올라오는데 지금의 심복사 자리에 오자 갑자기 무거워졌으므로 이 불상의 인연처라 생각하고 봉안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절을 지을 능력이 없어서 고심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바닷가에 큰 배 한 척이 있고 옆에 검은 소 세 마리가 있을 것이니 배의 목재를 이용해서 절을 지어라.”는 계시를 받았다. 천노인은 꿈의 계시대로 바닷가에 있는 큰 배를 발견하고, 그 배의 재목을 소의 등에 싣고 와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