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가(舜歌).
1882년(고종 19) 수구당의 한 사람으로 임오군란 때 장호원(長湖院)에 은거하고 있던 민비에게 대원군의 납치소식을 비롯, 왕궁의 근황과 청·일 양국의 출병사실 등 서울의 형세가 호전될 것을 전달해주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고종 일행이 경우궁(景祐宮)에 임시 거처하고 있을 때, 경기도관찰사로서 경우궁에 들어와 개화당에 합세하는 척 가장하고 몰래 왕에게 정변의 기밀과 개화당의 진상 등을 알려주어 왕과 민비에게 밀통하였고, 사대당 인물들과 모의하여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우차오유[吳兆有] 등을 움직여 행동을 개시하도록 하여 독립당의 혁신정부를 무너뜨렸다.
같은 해 충청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동학교도의 탄압에 앞장섰고, 1893년 이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에 올랐다. 1895년 삼국간섭 이후, 친러적 경향을 띠던 수구당내에서 궁내부특진관의 직책을 맡았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탁지부대신으로 재직하였으나 악화(惡貨)인 백동화(白銅貨)와 같은 보조화(補助貨)를 주조하여 유통질서에 혼란을 초래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독립협회로부터 탄핵의 대상이 되었다가, 1898년에 체직처분을 받았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