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택(公擇). 영의정 심회(沈澮)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곡산부사 심수(沈鐩)이다. 서인의 영수였던 심의겸(沈義謙)이 6촌형이다.
1567년(선조 즉위) 식년 무과(式年武科)에서 병과로 합격, 선전관을 역임하고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정리하여 의병을 모집, 수원성에서 적병의 진격을 막았다.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을 만나 사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가 힘을 합쳐 이를 수호하였다. 성이 함락되어 김천일이 먼저 전사하자,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화살이 다하자 북향재배하고 남강에 투신, 순절하였다.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전라도 영광의 장천사(長川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