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예조참의,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오탄(梧灘)
  • 중미(仲美)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경신대출척
  • 본관청송(靑松)
  • 사망 연도1688년(숙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의|예조참의|호조참의
  • 출생 연도1620년(광해군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해순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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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예조참의,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미(仲美), 호는 오탄(梧灘). 목사 심우정(沈友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심집(沈諿)이고, 아버지는 응교 심동구(沈東龜)이다. 어머니는 첨지 김수렴(金守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42년(인조 20) 진사가 되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임되었다가, 주서(注書)를 거쳐 전적(典籍)·병조좌랑·용안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 때에 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헌납(獻納)·사간·집의(集議) 등의 언관을 두루 거쳤고, 직강(直講)·사성·사도시정·옥천군수·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지낸 뒤 안변부사로 나갔다.

1674년(현종 15)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 仁祖의 繼妃인 莊烈王后)의 복상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대공설(大功說)을 주장하였던 서인(西人)이 실각하고 송시열(宋時烈)이 유배당하게 되었을 때, 사간으로서 송시열을 변호하는 주장을 폈다. 이로 인하여 이듬해 초에 관작을 삭탈당하고 광주(廣州)에 유배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다시 집권한 뒤인 1682년에 다시 등용되어 수찬(修撰)이 되고, 교리(校理)·응교(應敎)·사인(舍人)·동부승지·우승지·병조참지·예조참의 등을 거쳐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1684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대사성·홍문관부제학을 비롯하여 이조·예조·호조·형조의 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진 뒤에 간관들이 소론인 윤증(尹拯)을 구원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였고, 김수항(金壽恒)·이단하(李端夏) 등 노론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저서로는 『오탄집』이 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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