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일지(一志), 호는 제헌(霽軒). 아버지는 심사증(沈師曾)이며, 박필주(朴弼周)의 문인이다.
1753년(영조 29)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758년 영릉참봉(寧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74년에 다시 부수(副率)로서 세손인 정조를 보살폈고, 특히 경학에 뛰어나 강설(講說)이 좋았다는 칭송을 받았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중부도사(中部都事)·호조좌랑을 거쳐, 회덕현감에 부임하여 송준길(宋浚吉)이 만든 향약을 이곳 주민에게 시행하여 백성들의 교화에 노력하였다. 1781년(정조 5) 병으로 사직한 뒤에는 향약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위하여 송준길이 만든 향약을 다시 다듬어 전국적으로 실시할 것을 상소하였다.
1783년에는 다시 복직하여 호조좌랑이 되고 이어 제용감판관·송화현감을 지낸 뒤, 1785년에는 사어(司禦)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오위장을 겸하였다. 만년에는 저술에 힘썼으며, 저서로는 『제헌집』·『미호언행록(渼湖言行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