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신사지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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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석조 불상.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7년
  • 정성권
  • 최종수정 2026년 03월 27일
광주광역시 십신사지 석불 좌측면 미디어 정보

광주광역시 십신사지 석불 좌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석조 불상.

내용

십신사지 석불은 십신사지 석비와 함께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의 십신사지[구 광주농업고등학교]에 있었다. 1990년 십신사지 석불은 석비와 함께 현재의 위치인 광주시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이 석불은 원래 십신사지에 세워졌던 불상이 아니라 상신사지 또는 대황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십신사지 석불은 전체 높이가 4.5m이며 머리의 높이는 약 1m이다. 석불은 대좌와 신체, 머리가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기둥과 같은 형태의 불상이다. 머리 정상부에 깊이 30㎝가량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보개를 착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소발(素髮)이며 육계는 없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코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눈썹과 눈은 선각으로 얇게 표현하였으며 입은 미소를 띠고 있다. 불상의 귀는 머리 측면에 층단을 이룬 타원형의 형태로 단조롭게 표현하였다. 불상의 머리는 몸과 바로 붙어 있어 목이 짧은 편인데,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다. 착용하고 있는 법의는 양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 형태이다. 허리에는 두 줄의 띠가 표현되어 있는데, 두 줄의 띠가 허리를 두른 띠 가운데에서 흘러내려 다리 사이로 늘어뜨려져 있다.

십신사지 석불의 발은 발등을 경사지게 만들었으며 두 발을 모은 채 조각하였다. 불상이 밟고 서 있는 대좌는 연판문이 위로 솟은 복련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석불 입상의 대좌는 연판문이 아래로 향하는 앙련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십신사지 석불의 대좌는 복련으로 대좌를 만들고 불상의 바로 아랫부분만 연판문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십신사지 석불의 수인은 모두 복부에 모아져 있는데 오른손은 팔을 살짝 접은 채 꽃을 들고 있다. 왼손은 아래로 향한 채 오른쪽 배에 대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상이 꽃봉오리를 손에 들고 있는 경우 그 꽃은 용화(龍華)로 이해되고 있으며 고려시대 불상에서 다수 확인된다. 용화를 들고 있는 고려시대 불상은 미륵상으로 여겨진다. 미륵상이 꽃을 들고 있는 수인은 용화인(龍華印)이라 불리며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개최되는 용화삼회의 설법을 ‘용화’라는 꽃을 통해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십신사지 석불입상이 들고 있는 꽃 역시 용화로 해석되는데, 이 석불이 미륵불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한편, 조선 전기에도 용화를 들고 있는 불상이 조성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1412년(태종 12)에 제작된 보령 금강암 석불 좌상과 1490년(성종 21)에 조성한 서울 약사사 석불 입상을 들 수 있다.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안성 죽리 석조여래입상 역시 용화를 들고 있다. 조선시대 조성된 불상의 경우 명나라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는데, 십신사지 석불은 명나라 불상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고려시대 유행한 돌기둥 모양의 불상제작 전통이 잔존해 있다. 또한, 불상이 극도로 형식화되어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십신사지 석불입상의 조성 시기는 고려 말기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 『태봉과 고려 석조미술로 보는 역사』(정성권, 학연문화사, 2015)

  • - 「광주 십신사지 범자비 및 석불이전시말」(최몽룡, 『고고미술』138·139, 1978)

주석

  • 주1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인간이나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부처의 팔십수형호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 주2

    :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연 법회.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56억 7천만 년 만에 세상에 나타나서 용화수 밑에서 도를 이루고, 세 차례의 설법을 한다고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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