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133.5㎝, 가로 180㎝. 비단 바탕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대한 크기의 조선조 족자형 탱화와는 달리 세로보다 가로가 긴 아담한 크기의 액자형 탱화이다. 화면(畫面)은 깨끗하지만 화기(畫記)는 마멸되었다.
1908년에 이 불화를 구입할 당시 그림의 내용을 기록한 유물 카드를 보면 “道光十一年辛卯十一月十三日云(도광11년 신묘11월13일운)”이라 적혀 있다. 1831년(순조 31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면을 반으로 가르는 평상과도 같은 대좌 중앙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하단에는 일렬로 보살들과 사천왕(四天王)이 배열되었다.
상단에는 보살·비구·신중(神衆) 등이 둘러선 배치 구도로 앞 시대의 원형 구도와는 구별된다. 반면에 군도식 구도라는 점만 배제한다면 차라리 조선 초의 반원 형구도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 불화는 이 시대를 전후하여 액자형 탱화에 이와 같은 배치 구도가 새롭게 대두되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미타불의 신체는 보살들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왜소해졌다. 뿐만 아니라 평면성에 집착한 방형(方形) 구성이 정착된 점은 1476년 제작된 무위사벽화의 아미타불과 비교해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좌 앞에 부동자세로 정면을 향한 4보살의 광배(光背)는 무위사벽화의 보살의 광배를 재현한 듯한 원형의 두광과 타원형의 신광을 갖추었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만이 흑갑사와 같은 투명광으로 강조되었다. 마치 법의를 입은 듯한 보살의 겉옷 안으로 수평으로 가로지른 군의(裙衣)의 상단(上段)이 보이고 무릎 아래를 묶어 장식한 점이라든가, 보살상의 민머리 좌우로 수식(垂飾 : 드리개)이 나타나는 점은 조선 후기 보살상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특히 보살들 대부분이 거의 모두 합장한 자세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운동감 있는 사천왕 가운데 보탑 든 광목천왕만이 털 달린 투구를 쓴 점은 아마도 병자호란 이후의 북방적(北方的)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예로 1730년에 제작된 도림사아미타극락회상도, 1759년(영조 35년) 작인 청곡사남암아미타극락회상도(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를 들 수 있다. 적색과 녹색의 주조색(主調色)과 분홍색 등의 중간색을 이용하여 보색 대비에서 오는 강렬한 느낌보다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준다.
차분하나 섬약한 필선이 드러날 정도로 엷게 채색해서 이 당시의 불화치고는 밝고 화사한 면을 보인다. 그러나 각 형태가 경직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화기에 의하면, 화원(畫員)인 체균(體均)과 경욱(慶郁)이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