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로 남천(南遷)했던 공민왕이 1362년 전란이 평정된 뒤 환도하여 1363년 2월에 흥왕사(興王寺)를 시어궁(侍御宮)으로 삼고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같은 해 윤3월에 부원배(附元輩)들과 결탁한 김용(金鏞)은 반원개혁을 시도했던 공민왕을 살해하기 위해 흥왕사에 그의 도당 50여 명을 보내 왕을 시해하려고 하였다.
이때 왕을 호위하던 인원들은 모두 달아났고, 그 와중에 환자 안도치[安都赤]·첨의평리 왕재(王梓), 판전교시사 김한룡(金漢龍), 우정승 홍언박(洪彦博) 등이 죽임을 당하였다. 특히 환관 안도치는 자기의 생김새가 왕과 비슷했으므로 왕 대신 죽을 것을 결심하고, 환관 이강달(李剛達)로 하여금 왕을 업고 창문으로 피신하게 한 이후 자신은 왕의 침전에 누워 있다가 왕으로 오인한 적도들에게 살해되었다. 안도치의 열전이 『고려사(高麗史)』 권122, 열전35 환자전(宦者傳)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