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비서, 중국 첸첸일보 편집조사부장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교육자·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상해 한인학우회에 가입해 재무위원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1937년부터 난징에서 한국국민당의 청년단에 가입하여 『역보(力報)』·『항전일보(抗戰日報)』·『건군반월보(建軍半月報)』 등 잡지에 독립군의 활동과 일본의 침략 사실을 폭로 게재하였다.
1940년 9월에는 『일본 제국주의 철제하의 조선(日本帝國主義鐵蹄下的─朝鮮)』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한국 내의 일본 폭정을 폭로하는 등 문필으로도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40년 9월부터 구이린[桂林]에 있는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6분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그 곳에서 다시 중국 제3전구(第三戰區)에 가입해 대적선전을 담당하였다.
1944년 4월부터는 임시의정원 비서에 임명되었다. 그 해 6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 비서 및 편집위원을 겸하여 충칭[重慶]에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한편, 안병무는 1937년 국립 광둥중산대학 법학원 정치과를 졸업한 뒤 1941년 중국 장시성[江西省] 상라오[上饒]의 『첸첸일보(前綫日報)』의 편집조사부장을 역임하였으며, 1945년에는 중한문화협회의 비서,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주불공사의 비서를 지내기로 하였다.
광복 이후 국제연합한국재건단으로 활약했고, 1955년 경제사절단 기술보좌역과 1957년 국립체신학교 부교장도 지냈다. 196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흥국(興國)중고등학교 교장 등 10여 개 학교의 교장 등을 역임하면서 교육과 종교운동에 헌신하였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문화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천도교 종법사로도 활약하였다.
저술활동
상훈과 추모
서울 국립현창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국광복군』(이현희, 독립기념관, 1991)
- 『임정과 이동녕연구』(이현희, 일주각, 1989)
-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9)
-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한국민족운동사료』 2-중국편-(국회도서관, 1976)
- 『일제침략하한국 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976)
- 『대한민국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974)
- 『독립운동사』 4·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5)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朝鮮獨立運動』 Ⅲ(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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