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청년을 규합하고 반만항일군을 조직하는 것에 힘쓴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부터 1932년 사이에 독립투사양성소인 동광학교(東光學校)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반만항일군(反滿抗日軍) 조직에 적극 노력하였다. 1933년 1월에 일본영사관원이 체포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빨리 몸을 피하여 상해(上海)로 탈출하였다.
그 뒤 당시 동생 안춘생(安椿生)과 같이 당숙 안경근(安敬根)이 난징[南京]에 재류중임을 확인하고 경근·안정근(安定根)·안공근(安恭根) 등의 지시에 따라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구내에서 이 학교 지망생 30여 명과 이들을 지도하는 조완구(趙琬九)·차이석(車利錫)·엄항섭(嚴恒燮) 등 임시정부요인을 만나 합숙생활을 진행시키면서 보좌임무를 수행하였다.
1935년 여름 김구(金九)와 같이 공근으로부터 동삼성에 가서 반만항일운동을 전개하라는 특명을 받고 같은 해 9월 흑룡강 난서현(蘭西縣)에 도착하여 삼합(三合)농장주인 오영렬(吳永烈)과 제휴, 청소년을 모아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뒷날 독립투쟁에 직접 투입, 활용할 수 있도록 정예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35년 12월 일제의 주구 정준수(鄭駿秀)의 밀고로 인하여 일본경찰에 잡혀 4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그뒤 요시찰인물 제1호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 속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