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국진(國珍). 안종약(安從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안구(安玖)이고, 아버지는 전주부윤 안지귀(安知歸)이다. 어머니는 형조참판 박이창(朴以昌)의 딸이다.
1462년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계속 학업에 힘을 기울이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여러 차례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1465년(세조 11) 비로소 중부록사(中部錄事)에 제수되고, 이어서 벼슬이 높아져 1478년(성종 9) 지평(持平)에 이르렀는데, 이 때에 특히 관기확립과 풍속교정에 힘썼다.
사사(寺祀)의 혁파를 주장하고 탐오하다고 알려진 임원준(任元濬)·김국광(金國光) 등을 탄핵하는가 하면, 왕명을 받아 경기도 수원부에 나아가 형옥의 집행을 규찰하였다. 그뒤 외직으로 나아가 통주군수가 되어 민생을 보살폈고, 다시 조정에 들어가 사헌부장령으로서 충실히 언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강직한 안선의 언행은 반대세력의 반발을 사서, 1488년에는 무고죄로 파면되기도 하였다. 그 뒤 다시 복직되어 전옥서주부(典獄署主簿)·만경현감·장악원첨정·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하고, 제용감부정(濟用監副正)에 이르러 병사하였다. 위인이 강직하고 형옥에 밝았으나 주위사람으로부터 반발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