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율보(栗甫), 호는 학촌(鶴村). 안경렴(安景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대남(安大楠)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첨정 안정섭(安廷燮)이다. 어머니는 유간(柳澗)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2년(효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현종 초에 정언(正言)·영광군수·장령(掌令)·헌납(獻納) 등을 지냈다. 1664년(현종 5) 동래부사를 거쳐, 전주부윤을 지내고 1670년 동부승지·형조참의·승지·병조참의·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674년과 1677년에는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두 차례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0년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그 뒤 대사간·예조참판·개성유수를 역임하였다.
성품이 담백, 검약하였으며 효행으로 이름났고 문장에도 능하였다. 윤휴(尹鑴)와 친교를 끊고 송시열(宋時烈)을 비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