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 출신. 1924년 2월 사재를 정리하여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1928년 2월 군자금 모금의 사명을 띠고 귀국, 자기 소유 토지를 저당잡히고 4만 5000원(圓)을 가지고 상해로 갔다.
그 금액 중 2만 2000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나머지 2만원은 한인청년동맹(韓人靑年同盟)에 운동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이 청년회 상해지부 총회에서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9년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귀국하던 중 신의주에서 일본경찰에 잡혀 그해 1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