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천주교 관련 사적.
내용
양화나루 위쪽의 잠두봉은 봉우리 모양이 마치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고, 용두봉(龍頭峰) 또는 들머리[가을두(加乙頭)]라고도 불리었다. 이곳은 한강 연안 중에서도 양화나루 아래에 있던 망원정(望遠亭)과 함께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양화나루에서 밟는 겨울 눈’에 대한 시는 한도십영(漢都十詠)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많은 문인과 명사들이 애상하였다.
그러나 1866년(고종 3)에 제1차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면서 양화나루와 잠두봉의 역사는 일변하게 되었다. 이 해 로즈(Roze)가 이끄는 프랑스 극동 함대가 조선 원정을 시도한 끝에 8월 18일[양력 9월 26일] 양화진을 거쳐 서강(西江)까지 올라왔다 중국으로 돌아갔고 9월에 다시 강화를 침략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조선 정부는 이 일련의 사건이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 천주교 신자들의 도움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프랑스 함대가 거쳐간 양화진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이는 프랑스 함대의 침략에 대한 천주교 신자들의 책임을 묻고 백성들이 프랑스 함대와 내통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었다. 이후 잠두봉은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칼날을 받은 곳이라는 뜻에서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주교회에서는 순교지인 이곳을 1956년에 매입했고, 1962년에는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병인 순교 100주년[1966년]을 기념하여 1967년에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건립하고 가톨릭 성지[절두산 순교 성지]로 조성하였으며, 1968년 이래로 한국 성인들의 유해를 옮겨와 안치하였다.
참고문헌
논문
- 전우용, 「서울 양화진이 간직한 근대의 기억」(『서울학연구』 36,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9)
- 서종태, 「병인박해와 절두산 순교자들」(『한국교회사연구』 20, 한국교회사연구소,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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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산. 안산의 지맥이 와우산을 지나 한강 변에 이르러 솟아오른 봉우리로, 잠두봉이라고도 한다. 병인박해 때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이곳에 끌려와서 처형을 당하였다고 하여 이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높이는 30미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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