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을 채취하여 먹던 원시시대 때에 상하기 쉬운 해산물을 저장할 목적으로 말려두고 먹은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제물·공납물(貢納物;예전에, 나라에 의무적으로 내던 물품)·안주와 반찬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상고시대의 유적인 조개무지나 신석기시대의 유적에서 고기잡이를 위한 유물이 발견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일찍부터 어로에 의한 식품채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늘 고기를 잡을 수는 없으므로 한번에 많이 잡아서 햇볕에 말려두는 저장가공기술을 개발하였으리라고 본다. 청동기·철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농경이 발달하였지만 부식을 위하여 어패류의 채집은 계속되었다.
≪고려도경 高麗圖經≫에는 고려사람들이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어패류를 즐긴다는 내용이 있다. 향음조(鄕飮條)에 술안주로 어포·육포 등이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다양한 종류의 어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발달과 함께 제례·혼례 등의 여러 의식이 정착되었고, 손님접대를 중시하였으므로 어포는 필수적인 가정상비품이 되었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잉어를 소금·술·천초·파·생강에 절였다가 말리는 주리포법(酒鯉脯法)이 수록되어 있다. ≪음식지미방≫에는 해삼·전복 말리기와 간수하는 방법이 있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에는 민어포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어포를 만드는 방법에는 그대로 말리는 소건법(素乾法)과 얼리면서 말리는 동건법, 소금간을 하여 말리는 염건법, 쪄서 말리는 자건법(煮乾法) 등이 있다. 주로 문어·오징어 등은 소건법으로, 북어는 동건법으로, 굴비·암치·대구 등은 염건법으로, 전복·조개 등은 자건법으로 말린다.
안주용 어포는 생선살을 넓고 크게 떠서 간장·설탕·후춧가루·생강·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에 간이 배게 한 뒤에 채반에 펴서 햇볕에 말린다. 상에 올릴 때에는 육포와 같이 어울러 담고 잣가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