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여주목(呂柱穆) · 여규호(呂圭浩) · 여운서(呂雲瑞) · 여준(呂準).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항일투쟁에 전념할 것을 결의하여 생업인 의사(醫士)생활을 청산하고 이듬해 9월 전북 진안 마이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동맹단(同盟團)을 결성하고 이석용(李錫庸)의진에 입진, 중군장으로서 종군하여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임실 · 장수읍 등을 공격하였다. 그 뒤 1908년 5월부터 11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부하를 인솔하고 부호들을 위협하여 강제로 탈취한 금전 등을 군자금에 충당하였다.
1908년 11월 임실군 성수면 대운치에서 접전하던 중 일본군에게 잡혀 이듬해 3월 전주지방법원에서 교수형이 선고되었으나 이에 불복, 대구복심법원에 공소를 제기하였다. 그 뒤 대구형무소에 이감되어 법정 공판에 출두할 때 간수가 허리에 차고 있던 칼로 간수 2명을 살해하였다. 이어 4월에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