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송씨 족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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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송일이 1610년에 간행한 여산송씨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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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문신 송일이 1610년에 간행한 여산송씨의 족보.
내용

편집자는 송언신(宋言愼), 간행자는 송일(宋馹)이다. 분량은 1책, 판종은 목판본이며, 표제와 권수제 모두 ‘여산송씨족보’이다.

체제는 표지, 서문, 후서(後序), 보도(譜圖), 발문 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시기 다른 족보에서 흔히 보이는 범례, 부록은 없다.

송언신의 서문(1606)에 따르면, 여산송씨는 가전되어 온 주1이 있었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송언신은 족보 편찬을 위해 주2에 수소문하여 보첩을 구하였고, 어렵사리 송원경이 기록한 보첩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송원경의 보첩은 기본적으로 내용이 소략한데다 주3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오히려 주11은 소략하게 다룬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에 송언신은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자신의 친필 초고본을 작성해 두었으나 간행에 이르지는 못했다. 서문의 연대가 1606년인 것으로 보아 초고본이 완성된 것도 이 해로 생각된다. 그러던 중 1610년 주12 송일(宋馹)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족보 간행에 따른 경비조달 문제를 해결하자 자신의 주4본을 전달하여 간행케 한 것이 바로 이 족보이다. 송일의 발문에 따르면, 당진현감 송요인(宋堯訒), 단양군수 송선(宋瑄), 전의현감 송빙(宋騁) 등이 족보간행에 협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후서는 바로 송언신이 이러한 간행의 경위를 서술한 것으로 송언신 친필의 주5로 판각되어 있다. 이 후서의 말미에 ‘후손 호봉 송언신 편집(後孫壺峯宋言愼編輯)’, ‘후손 석곡 송일 재행(後孫石谷宋馹榟行)’이라는 기록이 있어 편집자와 간행자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보도는 6층 횡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표는 천자문의 순서가 아닌 숫자로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어 다른 족보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녀는 출생순으로 등록하고 있어 이른바 선남후녀(先男後女)의 유교적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6는 엄격하게 구분하여 서자(첩자)일 경우는 이름 위에 ‘첩자’라 표기하였다. 주7한 경우에는 이름 위에 ‘계자(繼子)’라 표기하였고, 후사가 없으면 아름 아래에 쌍행으로 ‘무후(無後)’라 표기하였다. 이성(異姓)은 사위와 외손 2대에 한하여 수록되어 있으며, 주기에 있어서도 이름과 관직만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각 인물의 주기(註記)는 개인에 따라 주8이 심한 편이다. 자(字), 호(號), 과거(科擧) 사항, 관직(官職) 사항, 주10 사항, 묘소(墓所) 위치와 주9 등이 상술된 경우도 있고, 이름만 기록하거나 생원, 진사, 문과 등의 과거 사항이나 관직 사항만 부기도 경우도 있다. 이 족보는 여산송씨족보의 초간본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여산송씨족보(礪山宋氏族譜)』(경술보)
주석
주1

족보로 된 책. 우리말샘

주2

한 조상에서 내려온 성과 본이 같은 일가(一家). 우리말샘

주3

성이 다름. 또는 다른 성. 우리말샘

주4

자기가 손수 쓴 원고. 우리말샘

주5

필획을 가장 흘려 쓰는 한자의 서체. 획의 생략과 연결이 심하다. 전서(篆書), 예서(隷書)를 간략히 한 것으로 행서(行書)를 더 풀어 점획을 줄여 흘려 쓴 것인데, 초고(草稿) 따위에 쓴다. 우리말샘

주6

적자와 서자, 또는 적파와 서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양자로 대를 잇게 함. 또는 그 양자. 우리말샘

주8

상세함과 간략함. 우리말샘

주9

묏자리나 집터 따위를 등진 상태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방향. 우리말샘

주10

남편과 아내가 다 죽었을 때에 그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1

한 조상에서 내려온 성과 본이 같은 일가(一家). 우리말샘

주12

성과 본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 유복친 안에 들지 않는 조카뻘이 되는 사람. 우리말샘

집필자
정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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