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1년(영조 37) 제작. 높이 97cm. 이 종을 제작한 이만돌(李万乭)이란 장인은 18세기 중엽부터 후반까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사장계(私匠系)의 인물로서, 이 종 외에도 영랑사종(影浪寺鐘, 1759년)·가야사종(伽倻寺鐘, 1770년) 등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쌍룡(雙龍)의 용뉴(龍鈕)를 지니고 종신(鐘身)의 상부에는 상대(上帶) 없는 원권범자문(圓圈梵字文)을 두르며 중신 중단과 하단부에 두·세줄의 돌기띠를 가미한 독특한 모습으로서, 전통종보다는 외래형에 가까운 혼합형 범종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종 역시 그러한 작품경향을 잘 보여 주는데, 쌍룡으로 이뤄진 용뉴(龍鈕)의 정상에는 보주를 받치고 있으며 입 안에도 각각 여의주를 물고 있다.
험상궂게 표현된 용뉴에 비해 반원형으로 이루며 힘없이 늘어진 가는 다리에는 도식적인 발톱이 묘사되었다. 천판(天板) 외연과 맞닿는 종신 상부에 한 줄의 융기선이 돌려지고, 그 바로 아래를 돌아가며 원권(圓圈)으로 두른 범자문이 장식되었다.
이와 조금 떨어져 네 방향으로는 방형의 연곽(蓮廓)을 배치하였는데, 연곽대에는 화려한 당초무늬를 장식하고 연곽 안으로는 국화 모양을 부조한 화문좌(花文座) 위에 얕게 돌기된 연뢰(蓮蕾)가 9개씩 표현되었다.
이 연곽과 연곽 사이마다 연꽃가지를 든 채 구름 위에 서 있는 보살입상을 1구씩 부조하였다. 왜소해진 신체와 얼굴, 그리고 의습의 표현이 매우 경직되고 도식적으로 처리되었다.
한편, 종신의 중단을 돌아가며 횡대(橫帶)와 같은 융기선대를 한 줄 돌리고, 동일한 융기선대가 종구(鐘口)에서 조금 위로 올라온 종신 하단면에도 돌려져 있어 이 사이 여백에 명문을 돋을새김하였다.
기록된 내용은 건륭 26년인 1761년에 옥천군남령(南嶺) 지륵산 영국사 대종(大鐘)으로 300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