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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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조선후기 경상도 71개 고을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집. 고지도.
정의
조선후기 경상도 71개 고을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집. 고지도.
서지적 사항

지도집의 크기는 세로 약 36.5㎝, 가로 약 22.5㎝이지만 수록된 지도는 세로 106~108㎝, 가로 83~89㎝ 내외의 종이를 접어서 제책한 것이다. 지도의 크기는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고을의 크기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그려 넣었다.

내용

『영남지도』에는 경상도 71개 고을의 지도가 모두 수록되어 있으며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책의 경주(慶州), 제4책의 남해(南海)·개령(開寧)·의령(宜寧)·안음(安陰), 제5책의 창원(昌原), 제6책의 하양(河陽) 지도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관리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집은 1리(里) 방안 위에 그려진 방안지도로서 각 군현지도는 8.3~8.5㎜ 크기의 방안을 그리고 그 위에 지도를 그린 대축척지도들이다. 다만 고을이 큰 제2책의 대구·안동·경주, 제5책의 상주·진주는 방안의 크기가 5.9㎜, 6.6~6.7㎜로 다른 지도보다 방안의 간격을 줄여서 넓은 지역을 같은 크기의 화면에 넣고자 하였다.

지도의 표현 방식은 제2책과 제6책 가운데 9개 군현이 같은 양식이며, 나머지 4책이 또 비슷한 양식이다. 또 지도집에는 동일한 정보는 동일한 기호로 표시하는 범례도 사용되고 있다. 읍치(邑治)의 경우 분홍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면(面)은 황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역(驛)은 짙은 살구색 바탕에 청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도로의 경우 대로(大路)는 적색, 중로(中路)는 황색, 소로(小路)는 청색을 사용하였다. 봉수로는 얇은 주황색 선으로 표시하였다. 특히 도로는 1리 방안지도의 특징인 직선으로 표현하였다. 주기(註記)에는 민호(民戶), 전결(田結), 세곡(稅穀)·군정(軍丁)의 수와 경도(京都)까지의 거리 등을 담고 있다.

또한 사방경계, 면(面)의 이름과 위치, 향교·서원·사당의 이름과 위치 및 사액(賜額) 여부, 창고·역·사찰의 위치, 역에 배치된 말의 종류 및 수, 산천의 이름과 위치, 진(津) 등의 지역 정보를 기록하였다. 산수의 표현 방식, 글씨, 건물 묘사 등은 책에 따라서 약간씩 다른 측면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지도 편집 과정에서 1인이 아니라 몇 사람이 동시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연대는 제5책의 창원지도에 1760년(영조 36)에 설치한 반산창(盤山倉)이라는 조창(漕倉)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안음과 산음은 1767년(영조 43)에 읍명을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고치기 이전의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1760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남지도』는 회화식 지도라 할 수 있으나 방안을 사용하고 지도의 내용을 기호화 하여 지도 제작에 정확성을 기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옛 지도』(문화재청, 예맥, 2008)
「상주목 군현지도와 상주박물관본 1리 방안 지도 연구」(김기혁, 『한국고지도연구』7-1, 2015)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집필자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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