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송재문 가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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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소석 고택 사랑채 정면
영동 소석 고택 사랑채 정면
주생활
유적
국가유산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에 있는 조선후기 안채 · 사랑채 · 중행랑채 · 곳간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영동 소석고택(永同 少石古宅)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유산(1984년 01월 14일 지정)
소재지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로6길 26 (초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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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에 있는 조선후기 안채 · 사랑채 · 중행랑채 · 곳간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내용

1984년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사 당시에 이미 집은 몹시 낡았고 퇴락해서 변형된 부분도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있었던 중행랑채와 곳간채는 이미 1920년대에 없어진 뒤여서 원형에서는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지정, 보존하게 되었다. 더구나 창건된 시기가 1885년(고종 22)경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 가치는 한층 더 명백해졌다.

이 집의 가치는 우선 산곡간(山谷間)의 집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을 지녔다는 데 있다. 넓은 들이 이웃하여 있고 평원의 광야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들은 제법 넓다. 넓은 들의 집은 주변에 따라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지닌다. 댓돌이 낮으며 기둥의 간살이 넓다. 산곡간 집이 주간을 좁게, 기둥을 높게 잡는 것과 다르다.

이 집도 차분하게 경영되었는데 그러면서도 집의 체대를 뜸직하게 하였다. 경제력의 과시이기도 하지만 들에서 작게 지으면 볼품없어 보이는 약점을 보완하려 한 것이다. 자연석 기둥 위에 세운 방주(方柱)들이 당당하다. 이에 따라 다른 부재들도 넉넉하고 튼실하게 사용되었다.

또 하나는 기법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채의 처리에서 그러한 기법의 능숙함을 볼 수 있다. 사랑채는 약간 경사진 터전에 자리잡았다. 뒤편이 높고 앞쪽이 낮다.

이럴 때에는 앞쪽에 석축하든지 하여서 터를 수평되게 고르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이 보통인데, 이 집은 그러한 보편성에서 벗어났다. 덤벙주초의 원리를 이용해서 경사에 따라 주초와 기둥의 길이를 조절하였다.

집의 수평은 마루를 깐 수장에서 잡았다. 따라서 마루 밑의 기둥과 주초의 높이는 경사도에 따라 차등이 생겼다. 맨 앞쪽의 기둥은 마루 밑으로 밑둥이 발달하여 마치 다락 아래의 누하주(樓下柱)처럼 생겼다.

사랑채의 오른편 날개 남쪽 끝칸은 내루(內樓 : 사랑채의 한칸을 다락으로 꾸민 것)처럼 꾸며 개방하고 기둥 사이에 난간을 둘렀다.

이 구성에서 보면 누하주같은 구조는 마땅한 것이었다. 경사를 이용하면서 효과를 얻는 놀라운 계산이 여기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로써 도편수의 경지가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이고 정면 6칸반, 측면은 단칸에 앞뒤퇴를 둔 구조이다.

서쪽부터 칸반의 부엌, 2칸의 안방, 2칸의 대청, 1칸의 건넌방 순서인데 안방에서 대청까지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그러나 건넌방에서는 아래를 열어 가마솥을 거는 아궁이를 만들었다.

홑처마이고 팔작의 기와지붕이며 합각에 전돌로 무늬를 놓아 장식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이 2칸반인데 좌우에서 앞쪽으로 날개가 돋아 ㄇ자형의 평면이 되었다.

이 중에서 동편날개는 내루인데 2칸통으로 만들었다. 보통은 단칸인 경우가 많은데 이 집에서는 특이하게 2칸으로 잡았다. 서쪽에서는 방과 부엌이 전출(前出)하였다. 이 부엌은 간이형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퇴락하여 원형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편 상-』(문화재관리국,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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