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장동사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자연유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서호면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전몽성 등을 배향한 사당.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희태
  • 최종수정 2026년 08월 14일
영암 장동사 미디어 정보

영암 장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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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서호면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전몽성 등을 배향한 사당.

내용

1987년 전라남도[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장동사는 전몽성을 추모하기 위하여 1677년(숙종 3)에 장천리 장동마을에 창건한 사우다. 1706년(숙종 32)에 중수하면서 전몽진을 추배하고, 뒤이어 1836년(헌종 2)에 전몽태(1571∼?)를 또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으로 헐린 뒤 1946년에 현 소재지에 옮겨 지었다.

전몽성은 임진왜란시 초토사 고경명(高敬命)의 막하에서 금산의 적을 토벌하였으며, 함평현감을 지냈다.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동생인 전몽진과 함께 창의하여 율치와 월출산 등지에서 싸우다 해암포(海巖浦)에서 순절했다.

전몽태는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외조카인 김완(1577∼1635)을 도와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사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관련자료로 『천안전씨문안(天安全氏門案)』1책과 『장동사청금록(長洞祠靑衿錄)』9책 등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유적으로 1887년 건립한 전씨 충효문, 전몽성과 전몽태의 신도비를 비롯해 수래정(修來亭), 재실인 원경재(遠景齋) 등이 인근에 있다.

참고문헌

  •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 -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8)

  • - 『영암군의 문화유적』(목포대박물관·전라남도·영암군,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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